“불황의 원인은 정부의 통화정책이다.”
처음 이 주장을 접했을 때,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우리가 늘 들어온 이야기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 이론』을 읽고 나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경제학의 기초가 의심스러워집니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학 이론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국가의 경제 개입,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금리 조정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 오스트리아학파란 무엇인가요?
● 경제학에도 다양한 ‘학파’가 존재합니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하나의 단일한 학문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수많은 흐름과 관점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케인즈학파, 시카고학파, 그리고 점점 관심이 높아지는 행동경제학,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오스트리아학파도 그중 하나입니다.
● 오스트리아학파의 시작과 중심 인물들
오스트리아학파는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경제 사상입니다.
창시자는 카를 멩거(Carl Menger)이며, 뒤를 이어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A. Hayek),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 같은 인물들이 중심에 섰습니다.
이 학파는 경제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거나 국가 중심으로 해석하는 전통을 거부합니다.
대신, 인간의 주관적 선택, 시장 질서의 자생성, 정부의 최소 개입을 핵심 원리로 삼습니다.
● 자유시장, 개인의 선택, 그리고 정부 불신
오스트리아학파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 인간은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경제는 숫자와 공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인간의 ‘의지’와 ‘선호’가 중요한 변수입니다. - 시장은 자생적으로 조절될 수 있다
가격은 시장 참여자들의 정보가 집약된 결과이며, 정부가 이를 건드리면 오히려 왜곡됩니다. -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망친다
특히 중앙은행의 금리 조작, 화폐 공급 조절은 잘못된 신호를 만들어 경제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 경기변동 이론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 경기변동이란 무엇인가요?
경기변동(business cycle)은 경제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현상입니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시장 실패의 결과라고 보고, 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는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합니다.
●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 이론의 구조
오스트리아학파는 경기침체는 정부의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의 잘못된 금리 조작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춘다
-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펴며 ‘돈 풀기’에 들어간다.
- 기업과 소비자는 싸게 빌린 돈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 하지만 이는 실제 수요에 기반한 판단이 아니라 ‘왜곡된 신호’에 의한 결정이다.
- 시장에 버블이 형성된다
-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자본이 비효율적인 곳에 몰린다.
- 결국 버블은 붕괴되고 불황이 닥친다
- 투자 손실, 실업, 파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이처럼, 경기침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잘못된 통화정책의 후유증’이라는 것이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입니다.
✅ 왜 케인즈주의와 충돌할까요?
● 케인즈주의는 ‘정부의 적극 개입’을 중시합니다
케인스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등장한 이론으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 Keynes)가 대표 인물입니다.
이 이론은 불황기에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낮추고, 사람들에게 돈을 돌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장이 스스로 회복하지 못할 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 생각은 현대 대부분의 경제정책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도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케인즈적 정책을 실행했습니다.
● 오스트리아학파는 이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봅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합니다.
“위기의 진짜 원인은 정부의 개입이며, 개입으로 더 큰 위기를 만든다.”
즉, 낮은 금리로 유도된 과도한 투자 → 자산 버블 형성 → 버블 붕괴 → 경기침체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이 바로 정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학파는 케인즈주의와 철학적으로도 완전히 충돌합니다.
시장에 맡겨야 할 조정을, 정부가 억지로 막으려 하면 오히려 더 큰 왜곡을 낳는다는 겁니다.
초보자를 위한 쉬운 비유: 술과 숙취
이 이론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숙취는 몸이 회복하는 과정이다.”
어젯밤에 과음을 했습니다. 다음 날은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죠.
이건 우리 몸이 회복을 위한 정화를 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때 또 술을 마신다면?
일시적으로 괜찮을 수 있어도, 결국 몸은 더 망가집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바로 이런 논리를 펴고 있는 겁니다.
경제도 술을 마신 뒤 숙취처럼 ‘정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 고통을 막으려 금리를 낮추고 돈을 더 풀면, 일시적으로 나아보이지만 결국 더 큰 위기가 온다.
책이 주는 가장 강력한 통찰
● 경제는 '정보 시스템'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 이론』은 하나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경제는 복잡한 정보 시스템이며, 그 핵심은 시장의 ‘신호’에 있다.
가격, 금리, 수요, 공급 등은 시장 참여자들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정보입니다.
이 정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참여자들의 판단이 틀어지고 잘못된 투자, 소비 결정이 일어납니다.
이 책은 금리 하나가 잘못되면 경제 전체의 자본 구조가 왜곡되고, 회복엔 긴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고 강조합니다.
● 회복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경기침체를 무조건 피하려는 시도는 숙취를 없애기 위해 또 술을 마시는 격이라는 비유가 자주 등장합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투자와 버블은 결국 정리되어야 합니다.
회복은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건강한 경제 체질이 회복된다는 것이 오스트리아학파의 입장입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드려요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분들께는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 평소 경제 뉴스를 보며 더 깊은 이해를 원하셨던 분
- 케인즈주의 정책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 있는 분
-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른 관점을 알고 싶은 분
- 시장 자율, 자유주의 경제에 관심 있는 분
- 진정한 경제적 사고 훈련을 원하시는 분
특히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철학적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경제는 살아있는 질서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 이론』은 단순히 경제 이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 철학 자체를 뒤흔듭니다.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말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스트리아학파가 던지는 질문은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경제를 보다 정직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통찰임을 느끼게 됩니다.
경제학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참 고 :
2.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독후감 – 자유주의 철학의 정수를 꿰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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