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공무도하' 독후감
『공무도하』 는 어떤 작품인가
『공무도하』는 김훈이 200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역사적 소재가 아닌 현대인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건이나 서사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인물들의 삶이 교차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무게감 있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마치 사회면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소설은, 작가가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며 체득한 시선과 문장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작품의 배경은 허구적 바닷가 마을 ‘해망’. 이름부터가 쓸쓸한 이곳에는 자신의 삶을 어딘가에서 망가뜨린 인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이들은 저마다 이유를 품고 있고, 사연을 숨긴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느 날 강을 건너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접어든다.
『공무도하』라는 제목의 의미는?
‘공무도하’는 한국 고대 가요 중 하나로, “임이시여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비탄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김훈은 이 제목을 통해 '강을 건넌다'는 것이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삶과 죽음, 선과 악, 진실과 침묵 사이의 경계를 넘는 행위임을 암시한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강을 건넌다'. 어떤 이는 죄책감의 강을, 어떤 이는 배신과 생존의 강을, 또 어떤 이는 무지와 외면의 강을 건넌다. 이 모든 선택은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여운은 더욱 깊다.
주요 인물 속 인간 군상 들여다 보기
이 소설의 백미는 등장인물이다.
김훈은 대단한 사건 없이도 인물들의 내면을 해부하고,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말한다.
문정수 – 진실을 좇다 스스로 무너진 기자
문정수는 한때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기자였지만, 세상의 냉혹함과 자신의 무기력함에 점점 무너진다.
그는 현실의 폭력성 앞에서 윤리를 선택하지 못했고, 때로는 외면했고, 때로는 동조했다.
그의 삶은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윤리성과 현실적 한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의 초상이다.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얼마나 복잡한 시선을 품고 있는지 보여준다.
노목희 – 지식과 감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성
노목희는 인문서를 편집하는 지식노동자이자, 문정수의 옛 연인이며, 타이웨이 교수의 책'시간 너머'를 편집하며 또 다른 사유의 세계를 접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학문적 교양과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지만, 결국 아무것도 완전하게 붙잡지 못한다.
여성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개인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감정이나 관계에서는 종종 멀어진다.
노목희는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이 겪는 딜레마의 축소판이다.
장철수 – 신념과 배신 사이의 상처 입은 자
장철수는 한때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이상주의자였으나, 고문과 체포 이후 동료들을 밀고하고 살아남는다.
그는 그 사실을 자책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것이 생존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과 삶은 '선한 선택'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훈은 장철수를 통해 인간의 던적스러움, 비루함 그리고 치사함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공무도하』 가 보여주는 현대 사회의 단면
인간 군상의 실패와 노동의 비극
『공무도하』는 직업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인간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한결같이 삶의 무게와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 해고 노동자의 추락
- 폭우 속에서 갈등하는 이웃 마을 사람들
- 상습적으로 의붓 딸을 강간한 아버지를 살해한 20대 아들
- 여고생 방미호의 크레인 사고
- 소방관 박옥출의 도둑질 등등...
이러한 사건은 단순한 사회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윤리적 실패와 제도의 맹점을 드러냅니다. 김훈은 이 현실을 과장 없이, 오히려 차갑고 무심한 문장으로 그려냄으로써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왜 지금 『공무도하』를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침묵하는 언론, 분절된 인간관계, 실패한 정의.
『공무도하』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강을 건너고 있다.
누군가는 죄책감의 강을, 누군가는 생존의 강을. 그리고 강을 건넌 뒤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선택만이 남는다.
『공무도하』는 그 강 앞에 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안고 건너고 있는가?
개인적 감상과 문학적 가치
『공무도하』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누구 하나 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인공도, 조연도, 단역도 모두 비루하고, 치사하고, 피로한 인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김훈은 이 비루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루함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절실함을 드러냅니다.
어떤 문장은 칼처럼 날카롭고, 어떤 문장은 깊은 바다처럼 침잠해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뭔지 모를 허탈함과 인간에 대한 혐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수라도 아닌 그저 각자의 인간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 삶의 던적스러움, 비루함, 비열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겐 '희망'이 있음을 이 책은 전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김훈의 『공무도하』는 단순한 서사도 아니고,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강을 건너버린, 되돌릴 수 없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나약했고, 때로는 비겁했으며, 또 때로는 부당한 현실에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김훈은 그들을 문학의 언어로 끌어안습니다. 김훈은 이 소설을 통해 결국 인간 삶의 던적스러움, 비루함, 비열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강 앞에 서 있습니다. 건널 것인가, 머물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공무도하』는 그 물음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무게감이 있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