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고요하게 물든 하루 – 영화 '퍼펙트 데이즈' 후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를 본 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이 가슴 한켠에 잔잔하게 머물렀다.
어떤 영화는 큰 감정의 파동으로 관객을 휘어잡고, 또 어떤 영화는 속삭임처럼 다가와 서서히 스며든다. 이 영화는 분명 후자다.
이야기라기보다 '느낌'에 가까운 이 작품은, 조용하고 고요한 일상의 틈을 통해 우리가 종종 놓치고 있는 삶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다이내믹한 서사도 없지만, 그 안엔 묵직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 감동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기에 더 오래 남는다.
반복되는 하루,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지 않은 날들
히라야마의 하루는 겉보기에 완벽하게 반복된다. 알람 소리에 맞춰 잠에서 깨고, 이를 닦고, 식물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 꺼내들고 자동차에 올라탄다. 출근하는 도중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다.
그가 청소하는 도쿄의 공공 화장실은 매일 똑같고, 그에게 주어진 일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루틴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단순한 패턴 속에서,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포착한다.
히라야마는 루틴을 ‘의무’로서가 아니라, ‘의식’처럼 수행한다. 마치 사찰의 스님이 매일 같은 방식으로 탑돌이를 하듯, 그는 정성스레 바닥을 닦고, 변기를 문지른다. 이 반복은 단조로움이 아니라 존엄성과 집중력을 수반한 삶의 방식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반복’이라는 단어의 이면을 보여준다. 비슷한 하루라도, 그날의 햇빛은 다르고, 나뭇잎의 흔들림도 다르며, 하늘의 구름 역시 다르게 흘러간다.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 하나, 중고서점에서 만난 책 한 권,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가 하루 전체를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이렇듯 영화는 '일상이 주는 다채로움'을 정지된 화면처럼 관객에게 천천히 보여준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다고 느껴지는 그 하루 속에, 실은 단 한 번도 반복된 적 없는 순간들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가 말하는 삶의 진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다음이지" 라고...
히라야마, 그가 말없이 전하는 것들
히라야마는 많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의 질문에도 짧게 대답하고, 대화를 이어가기보단 미소로 반응하거나 침묵을 택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품고 있다.
히라야마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을 말한다. 그의 손이 청소 도구를 쥐는 방식, 바닥을 닦을 때의 눈빛, 쓰레기통 속 버려진 책을 주워 다시 세워놓는 작은 동작 속에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녹여낸다. 그것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조용한 약속이자 삶에 대한 태도다.
그의 집은 히라야마의 내면을 반영한다. 불필요한 것은 없지만, 사랑하는 것들은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다. 잘 정리된 책장, 조심스레 물을 주는 식물, 오래된 워크맨과 카세트 테이프. 그것들은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말해주는 조각들이다.
그리고 히라야마가 듣는 음악들 – 루 리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니나 시몬. 이들의 음악은 그가 어떤 감정의 깊이를 가진 사람인지 보여준다. 감정은 표현되지 않았을 뿐, 없었던 것이 아니다.
결국 히라야마는 ‘소리 없는 언어’로 관객과 대화하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나요?" 그 침묵 속엔 깊은 울림이 있다. 말이 없기에 더 큰 이야기로 다가오는, 그런 존재가 바로 히라야마다.
도쿄라는 도시가 품은 가장 인간적인 풍경
펄팩트 데이즈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영화의 도쿄는 우리가 흔히 아는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카메라를 도시의 이면으로 돌린다. 화장실, 골목, 오래된 서점, 오래된 목욕탕, 세탁소, 재래 시장, 그리고 공원.
이런 공간들은 히라야마의 하루를 구성하는 배경이자, 그가 살아가는 세계다. 그 도시의 색감은 탁하지 않고, 조용하게 따뜻하다. 무채색에 가까운 화면은 어느새 햇살 한 줄기에 생명을 얻고,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하나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도쿄는 히라야마에게 낯선 도시가 아니라, 친근하고 따뜻한 안식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하루를 통해, 우리의 하루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완벽한 날이란 무엇인가?
Perfect Days라는 제목은 하나의 질문이다.
완벽한 날이란 과연 어떤 날인가? 우리는 종종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완벽한 하루라고 느낀다. 계획이 완벽히 이루어졌거나, 큰 성취가 있거나, 행복한 사건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그날을 ‘좋은 날’이라 말한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완벽한 날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의 하루는 조용하고 단조롭지만, 그렇기에 더욱 완전하다.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면의 평온과 중심이 그 날을 완벽하게 만든다.
그는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SNS에 올릴 만한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전한다. 히라야마에게 완벽한 날은 ‘존재 자체로 충분한 하루’다. 불완전해 보여도, 그 날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작은 기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완벽한 하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는 운전 중 창밖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미소 짓는다. 눈물이 글썽이기도 한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웃음은 "이 하루가 완벽했다"는 조용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완벽한 날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가 그 답을 스스로 묻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이 순간도 괜찮다’는 용기를 준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깊은 위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수 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어.
서로 연결된 세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라고
어떤 사람들은 부, 명예, 직장, 외모 등에 삶의 의미를 두고,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긍정하며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에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다를 뿐인 것 아닐까?
각자의 세상이 있고, 그 세상 속에서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용기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혼, 빔 벤더스의 시선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작은 아니지만, 제작자로서 그의 감수성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가족, 일상, 침묵, 사람, 그리고 소소한 사랑. 이는 고레에다가 꾸준히 탐색해온 테마다.
거기에 빔 벤더스의 철학적 시선이 더해져 퍼펙트 데이즈는 더욱 깊고 조용한 울림을 가진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의 서정성과 독일 감독의 철학적 관조가 어우러진 진귀한 결과물이다.
이런 감성은 전 세계 관객들에게 통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칸 영화제(남우 주연상 수상)에서도 주목받았고,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피곤하고, 마음이 복잡할 때 봐야 할 영화
우리는 자극적인 정보와 끊임없는 속도 경쟁 속에 살아간다.
그 속에서 진짜 나를 잃기도 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그냥 조용히 하루를 살아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당신의 오늘도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하루,
사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한 하루였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 히라야마처럼 살아보기
히라야마처럼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진 못하더라도, 그의 하루에서 한 조각만이라도 닮아보면 어떨까?
조금 더 느리게 걷고, 햇살을 한번 더 바라보고,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감각에 집중해보는 것. 거기서 우리는 정말로 ‘나’로 존재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저 한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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