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에릭 호퍼의 「 길 위의 철하자 」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길 위의 철학자』 줄거리 요약
『길 위의 철학자』는 에릭 호퍼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철학적 사유의 과정을 솔직하게 담은 에세이입니다.
어린 시절, 호퍼는 5살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로 7살 때 시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기적처럼 15살에 시력을 회복한 이후 그는 독서광이 되어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책과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로 인하여 책을 접하게 되고 그 이후로도 다양한 영역의 책들을 읽고 사색하는 삶을 이어갑니다.
청년 시절부터 그는 미국 전역을 떠도는 노동자 생활을 하며 과수원, 부두, 건설현장 등에서 막노동을 했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고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유하고, 관찰하고, 글을 씁니다.
책은 이 떠돌이 노동자(본인)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철학을 일구어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대중의 심리, 사회의 모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남기며,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결국 철학자이자 작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특히 그는 "나는 사상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다. 나는 그저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려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차 례》
- 실명,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 빈민가로 떨어지다
-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 유대인과의 만남
- 성서 속에서 진실을 상상해 내다
- 자살을 결행하리라
-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방랑자의 탄생
-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의 용기
- 샌디에이고로 가는 길
- 떠돌이 노동자에서 사상가로
- 오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은 대단해
- 인간과 개의 상호작용
- 자두 농장의 이탈리아인들
-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
- 누그든 혼자 힘으로
- 게으른 건달 조니 이야기
- 버클리에서 헬렌과 만나다
- 나는 헬렌을 깊이 사랑했다
- 앤슬리의 죽음
- 난 네가 천사가 아니란 걸 알지
- 술고래 양치기 애브너
- 농장주 쿤제가 남긴 유언
-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단상
-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다
- 떠돌이 노동자에서 부두 노동자로
- 내게 행복의 순간이 있었던가?
- 진정으로 용서한다는 것
《책 속에서》
열다섯 살 때 나는 시력을 되찾았다. 돌연한 시력의 상실과 회복에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익숙해질 수 있었다. 마르타는 농담처럼 "호퍼 집안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50세를 넘긴 사람이 없었다.
"에릭,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할 거야."
그 말은 내 가슴속에 뿌리를 내렸고, 내가 몇 년 동안 노동자로 철 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바탕이 되어 주었다. 나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왔다.
갑자기 나는 비둘기들을 지켜보면서 배고픈 것을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에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배고픔은 단지 치통 정도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걸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갑자기 나는 몸이 가벼워짐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엘센트로의 임시수용소에서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수용소 밖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일까? 그때까지 나는 떠돌이 노동자를 특수한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떠돌이 동료들을 인간 물체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생애 처음으로 얼굴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이 유례없는 존재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약자 속에 내재하는 자기혐오는 일상적인 생존 경쟁에서 유발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에너지를 드러낸다. 약자들에게서 분출되는 강렬함은 말하자면 그들에게 특수한 적응력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인간을 유례가 없는 종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약자들의 특이한 역할이다.
홀로 있을 때가 창조의 정점에 있는 것이라 믿으며 나는 일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중요한 구상의 대부분은 내가 군중 속에 휩쓸려 있을 때 태어났다.
♡ 교육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 권력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
▶ 좌절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드러난다.
♧ 희망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 언어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이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 행복
이런저런 것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염된 자아에 있다는 인식을 억누르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도한 욕망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억누르는 수단이 된다.
♣ 종교
종교는 신이나 교회, 성스러운 동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 몰입의 근원은 자아애,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거부에 있다. 헌신은 자아 거부의 앞면이다. 종교적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왜냐하면 몽테뉴도 지적했듯이 '자기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 국한된 '병'이기 때문이다.
☞ 증오
증오가 정당한 불평보다는 자기 경멸에서 솟아난다는 것은 증오와 죄의식의 밀접한 관계에서 드러난다.
$ 돈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 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난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산타야나는 일이 의미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몰염치라고 말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산업사회에서는 수많은 일이 끝내고 나면 별 의미가 없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요. 내가 하루에 6시간씩 1주일에 5일 이상 일을 해서는 안되며, 일이 끝난 뒤에는 실질적인 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에요."
마무리하며
책을 읽다 문뜩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잠깐 그 노래 가사 일부를 볼까요?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에릭 호퍼는 특별한 계획 없이 일을 찾아 길을 떠나고, 책을 읽고, 사색을 즐겼습니다.
위 노래는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지만, 호퍼는 자신을 '하숙생'이 아닌 '주인'으로 생각하며 살아 갑니다.
정처 없이 흘러서 이곳 저곳을 가난한 노동자 신분으로 떠돌지만, 그는 삶을 그의 방식대로 살아가는'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쓸데없고 허무맹랑한 '희망' 보다는 그 희망을 달성하려는 '용기'에 더 큰 의미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이 정처 없이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게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고 :
1. 위화 장편 소설 『인생』 리뷰-잃고 또 잃으면서도 살아내는 이유
2. [인생영화 리뷰] 퓨리(Fury): 전쟁의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인간다움
3. 알베르 카뮈 『페스트』 독후감 – 절망 속 희망을 건져낸 실존주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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