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대표작 중 하나다. 1960년 생으로, 원래 치과의사를 돕는 발치인(이빨을 뽑아주는 사람)이였던 그는 1983년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해 ‘인생’, ‘형제’, ‘허삼관 매혈기’ 등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허삼관 매혈기』는 1996년에 출간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막 수립된 시기인 1950~1960년대의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국내에는 푸른숲 출판사를 통해 2007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꾸준히 사랑받으며 현대 중국문학 입문서처럼 여겨지고 있다. 또한 2015년에는 한국에서 하정우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장르는 소설이며, 그 속에는 유머, 풍자, 감동, 슬픔, 인간애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작가의 말》
「허삼관 매혈기」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자기가 사는 작은 성 밖을 벗어나지 않아야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다른 이들처럼 그에게도 가정이 있고, 처와 아들이 있다. 역시나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남들 앞에서는 다소 비굴해 보이지만, 자식과 마누라 앞에서는 자신만만해 집에서 늘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머리가 단순해서, 잠잘 때야 꿈을 꾸겠지만 몽상 따위에 젖어 살지는 않는다. 깨어 있을 때는 그도 평등을 추구한다. 그러나 야곱 알람스의 백성과 달리 절대로 죽음을 통해 평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의 생활이 그럿듯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추구하는 평등이란 그의 이웃들,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아주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생활의 편리함이나 불편 따위는 개의치 않지만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인내력을 잃고 만다.
그의 이름은 '허삼관'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허삼관은 일생 동안 평등을 추구했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결국 그의 몸에서 자라는 눈썹과 X 털 사이의 불평등이었다. 그래서 그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X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줄거리 요약》
허삼관은 평범한 중국의 남자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돈도 없지만, 묵묵히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가장이다. 그는 피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어느 날 그는 예쁘지만 성격 센 허옥란과 결혼하고, 세 아들—일락, 이락, 삼락—을 낳는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가족이지만,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첫째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 허삼관은 허옥란이 과거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격분한다. 하지만 그는 곧 일락이에게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며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다.
삶은 점점 더 고되고,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가족의 병원비, 생활비, 아이들의 사고... 허삼관은 다시, 또다시 자신의 피를 판다.
어느새 그는 ‘매혈’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매혈은 그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결국 그는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고, 더 이상 피를 팔 수도 없게 된다. 그렇게 허삼관은 천천히 무너져간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존엄하다. 삶의 끝에서도 그는 여전히 가족을 위해, 조용히 버텨낸다.
《등장 인물》
● 허삼관
소설의 중심인물. 평범하고 우직한 인물로, 가족을 위해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이다.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유머와 허세, 자존심이 공존하며 매우 인간적이다.
● 허옥란
허삼관의 아내. 아름답고 강한 여인. 과거의 연인과의 일이 밝혀지며 위기를 겪지만, 결국 허삼관과 함께 삶을 이어간다. 묘하게 매력적이며, 허삼관을 자주 압도하는 존재감이 있다.
● 일락
허삼관이 가장 사랑하지만, 실은 친아들이 아닌 인물. 하지만 결국 허삼관과 가장 깊은 유대를 쌓게 된다. 이 인물은 ‘혈연’과 ‘정(情)’ 중 무엇이 가족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이락 & 삼락
다른 두 아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친자식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비교적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형 일락과의 대비를 통해 허삼관의 심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작품이 전하는 핵심 주제는 ‘삶의 존엄성과 가족을 위한 희생’이다. 허삼관은 사회적 시스템의 희생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적 논리 속에서 피마저 상품이 되는 냉혹한 현실의 상징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위화는 그것을 마냥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대사와 장면들로 독자의 감정을 교묘히 이끌며, 삶의 아이러니를 직시하게 한다.
허삼관은 냉혹하고 처참한 환경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의 삶을 살아낸 사람이다. 허삼관은 자살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앞에 닥친 일을 그저 마주하고, 견디며, 때로는 즐기며 살아간다. 김훈 소설 「남한산성」에서 자주 등장하는,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라는 말처럼...
한편 허삼관의 인생은 위화 본인의 또 다른 소설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푸구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또 한 사람, 바로 허삼관이 아닐까?
참 고 :
3.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리뷰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